해방 직후 음악가들은 한자어로 된 음악용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자주 써서 그렇겠지만,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잇단음표, 으뜸음, 딸림음' 같은 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고음부기호, 저음부기호, 연음부, 주음, 속음'이란 말에 비해 더 정겹고 음악적이며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도돌이표'.('되돌이표'나 '반복기호'라는 말이 있지만 자주 쓰지 않는다.) 악보에서 노래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하여 연주하거나 노래하라고 표시해 두는 기호인 이 말은 참 신통하다. '되감다, 되묻다, 되살리다, 되새기다, 되찾다, 되팔다, 되풀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도로'나 '다시'의 뜻을 갖는 접두사는 '되-'이다. '도-'라는 접두사는 없다. 그런데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되돌이표'보다 '도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도돌이표'란 말을 굳이 떠올렸으니 말맛을 살리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우스갯소리로 '되돌 되돌 되돌이'라 하면 뻑뻑하지만, '도돌 도돌 도돌이'는 발랄하다. 아이들도 도돌이표가 있는 노래를 좋아한다. '신나는 노래를 끝내지 않고 다시 돌아가서 부를 수 있다니!'
이 지루하고 불길한 나날은 겉보기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도돌이표를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 지금 우리는 도돌이표를 지나고 있다. 반복하면 할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더 굵고 선명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 도돌이표를 벗어나면 새롭고 색다른 선율에 올라탈 수 있으리라.
[덧붙임] 사전에는 '도돌이표'와 '반복기호'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악보에 반복을 표시하는 방법은 도돌이표 외에도, '달 세뇨'(D.S), '다 카포'(D.C) 따위가 더 있으니 도돌이표는 반복기호의 일종일 뿐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