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말글살이

말글살이 - 비상계엄, 예외 상태 늑대의 발톱을 보았다. 무디고 느려 조롱거리로 전락했지만, 우리의 일상이 겨울 낙엽처럼 하루아침에 바스러져 버릴 뻔했다. 두려웠다. 그것은 공격형 헬기가 밤하늘을 찢어 버리고 신형 장비로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거리를 어슬렁거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총탄에 쓰러지는 시민들의 주검과 체포 구금되는 반대자들의 행렬이 그려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선포'라는 언어 행위 앞에서 새삼 느껴지는 두려움이었다. "저는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선언을 들으며 엄습하는 무력감 같은. 비상계엄, 즉 '예외 상태'의 선포는 말의 극단적 폭력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말 한마디로 폭력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말 한마미로 모든 법을 폐지할 수 있다니, 법질서를 효력 정지시킴으.. 더보기
말글살이 - ‘-음’ 기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다. 괘종시계를 분해하여 안을 들여다보면 에너지를 만드는 태엽, 에너지를 전달하는 톱니바퀴, 에너지를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만드는 탈진기 등의 부품이 있다. 말도 시계처럼 부품들로 분해할 수 있다.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와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대표적이다. 명사와 동사를 조립하면 하나의 사건을 표현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린다','사람을 만났다','밥을 먹었다'. 그런데 동사에 '-음'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붙이면 명사로도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다.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이건만, 마치 형체를 갖춘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다. 태엽이 시곗바늘이 된 형국이랄까? '걸음','도움','울음','.. 더보기
말글살이 - 시국선언과 글쓰기 "도대체 누가 그 글을 썼는가?" 지난주 내내 전화, 문자, 전자우편, 카카오톡으로 받은 질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정규직·비정규직 교수자와 연구자들이 '나는 페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그 글의 저자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나를 지목하기도 하던데, 나는 아니다. 어쭙잖은 잡문이나 쓰는 내가 언감생심 그런 글을 쓸 리 없다). 선언 초안자에게 우리는 두가지를 주문했다. '1인칭으로 쓰자.' '분노보다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고백하자.' 아무도 읽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선어문에서 벗어나보자는 제안을 그는 요령 있게 잘 표현했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와 .. 더보기
말글살이 - 말하지 않기 인간은 집요하게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지 않는 존재'까지 생각해내어 거기에 악착같이 의미를 부여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유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끌어올린 힘일지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유함으로써 인간 문명은 봄철 개나리꽃 피듯이 만개했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억만배는 더 많다. 공룡, 도깨비같이 잘 알려진 것 말고도 많다. 쓰지 않은 편지, 만들지 않은 음식, 그리지 않은 그림, 준비하지 않은 선물, 필름 없이 찍은 사진···. 그러한 것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아니다. '쓴 편지'보다 '쓰지 않은 편지'가 더 설레고, '그린 그림'보다 '그리지 않은 그림'이 더 예술적일지.. 더보기
말글살이 - 경조사 '높낮이'처럼 반대말끼리 부둥켜안아 새 단어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한몸이 되면 뜻이 달라지기 일쑤. '위아래'는 정반대의 위치를 가리키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 사이의 위계를 뜻하기도 한다. '홀짝'은 단순하되 박진감 넘치는 놀이이다. '오르락내리락'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되풀이'하는 모습을 담는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에 쓰인 '오다가다'는 아예 품사를 바꾸어 '우연히'라는 뜻의 부사가 되었다. 한자어는 더 흔하다. '전후, 좌우, 선후, 완급, 강약, 장단, 빈부, 귀천, 희비, 생사, 출입···.' 끝이 없다. 서양 말에는 이런 식의 단어 조합이 없다. 그중에 '경조사'라는 단어는 왠지 입속의 모래처럼 꺼슬꺼슬하다. '경사'와 '조사', 기쁜 일과 슬픈 일의 병존이라니. 둘은 정말 같이.. 더보기
말글살이 - 감히 '감히'에 쓰인 '감'은 한자로 '敢'이다. 중국 갑골문에 새겨진 그림글자를 보면 사람이 맹수의 꼬리를 손으로 잡는 모습을 본떴다. 호랑이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꼬리를 덥석 잡을 수 있을까? 아서라, 배가 부른 맹수라도 아량을 베풀지 않으리. '감히'는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두가지 의미로 나뉜다. '어디서 감히' '감히 뉘 앞이라고'에서처럼 상대방을 향해 쓰면 말이나 행동이 건방지고 주제넘고 '선을 넘었음'을 지적하는 말이 된다. 이 말을 쓰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얼굴은 굳어진다.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멀어지면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감히'라는 말은 신분제 사회 질서가 남긴 발자국이다. 점원이 손님에게, 학생이 선생에게, 평민이 귀족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없는 사람이 .. 더보기
말글살이 - 유해 도서를 권함 돌이켜보니, ‘어른들’한테서 성교육을 받은 적이 단 1분도 없다. 누구에게도 콘돔 사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월경 주기와 가임기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성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타인의 삶도 존엄하다는 걸 깊게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저 학교와 사외 전체가 외치는 구호를 복창했다. ‘몸은 탐닉의 대상이 아니다. 드러내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근엄한 목소리로 ‘쉿, 숨기고 감추고 누른고 참아라. 나중에 다 알게 된다.’ 그럴수록 입으로 전해지는 말초적인 성 담론은 더욱 신뢰가 갔다. 성별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의식이 더해져 지금의 볼품없는 내가 되었다. 성교육은 몸을 은밀한 무엇으.. 더보기
말글살이 - ‘무례하다’는 생각 · 전화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무례하다! 처음 전화를 걸면 자신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는 걸 당죄 모른다. 몇달 만에 연구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떤 젊은 녀석(!)의 얘기인즉슨,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려고 하는데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으니 편집간사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전화 거신 분은 누구신가요?" 그제야 깜짝 놀라며 어느 대학 대학원생 누구하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할 말만 다다닥 하는 전화를 받으면 부아가 치민다.무례한 친구군! 그런데 문든,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는 나를 생각한다.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생각한다. 나처럼 비굴한 사람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