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 과잠
옷은 입이 없는데도 말을 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 머뭇거림도 없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옷만 말하는 게 아니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자신의 취향, 직업, 습관, 가치관을 말한다. 옷은 말을 빼닮았다. 선택하기와 배열하기, 말이 여러 단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주어 목적어 서술어'라는 순서에 맞춰 배열하듯이, 옷도 상의에 맞춰 하의를 고르고 양말과 신발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말에 메시지가 담기듯, 옷에도 메시지가 담긴다. 오늘은 경쾌하게, 오늘은 단정하게, 오늘은 자신감 넘치게, 오늘은 슬프게, 오늘은 섹시하게···옷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침마다 '드레스 코드'를 정하는라 시간을 보내지. 요즘엔 대학을 불문하고 학과 점퍼, 일명 '과잠'(꽈점)을 많이 입고 다니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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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 도돌이표
해방 직후 음악가들은 한자어로 된 음악용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자주 써서 그렇겠지만,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잇단음표, 으뜸음, 딸림음' 같은 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고음부기호, 저음부기호, 연음부, 주음, 속음'이란 말에 비해 더 정겹고 음악적이며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도돌이표'.('되돌이표'나 '반복기호'라는 말이 있지만 자주 쓰지 않는다.) 악보에서 노래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하여 연주하거나 노래하라고 표시해 두는 기호인 이 말은 참 신통하다. '되감다, 되묻다, 되살리다, 되새기다, 되찾다, 되팔다, 되풀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도로'나 '다시'의 뜻을 갖는 접두사는 '되-'이다. '도-'라는 접두사는 없다. 그런데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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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 일머리
말은 돌려쓰기의 달인이다. 일인다역이자 팔색조, 망치 없는 집에 돌멩이가 망치 노릇하듯, 단어 하나에는 뜻이 여럿 들러붙어 있다. 단어 '머리'의 쓰임을 볼작시면, 그 변신술이 신통하다. '머리 숙여 인사한다'에 쓰인 머리는 눈, 코, 입 포함 목 윗부분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다'에서는 머리카락이 난 부분만 가리킨다. 코를 만지며 '머릴 쓰다듬는다'고 할 순 없다. '머리를 자르다, 깎다, 기르다'는 머리카락을 뜻하는데, '머리통'(head)과 '머리카락'(hair)을 나누는 서양인에게는 '교수형'이 떠오르리라. 머리카락의 상태나 '양'(!)에 따라 '더벅머리, 곱슬머리, 생머리 , 대머리' 같은 말을 쓴다. 머리통 속의 내용물('뇌')을 가리키기도 한다. '머리 아프면 두통약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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