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풋라이트'(footlight)를 직역한 말인데, '무대 앞 배우의 다리(脚)쪽에서 얼굴을 향해 쏘아 올리는 조명(光)'이다 보니 배우에게 시선이 쏠릴뿐더러 그림자도 거인처럼 길게 늘어져 연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제격이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도 '각광'과 비슷하다. 각광의 사명은 무대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 모든 걸 비추는 건 각광이 하는 일이 아니다. 각광은 배우에게 '당신은 단역이 아니라 주인공이다'라고 속삭인다. 말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다. 선택 없는 말하기는 없다. 말하는 만큼 사건과 기억이 드러나지만 그만큼 버려지고 잊히는 것이 많다. 말은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데, 그런 점에서 말은 현실에 앞선다.
평범한 사람이 무대 조명을 받는 경우가 드물듯이 '각광을 받는 것', 달리 말해 타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인위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일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절집 신발 벗는 곳에는 '조고각하'(照顧脚下)란 글귀가 적혀 있다. 어떤 제자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선생은 "조고각하"라고 했다지. '헛소리 말고 자기 발아래나 살피렴!"
지하철 안전문(스크린 도어)에도 '발빠짐 주의!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영어로 'watch your step!'(워치 유어 스텝)이라 적혀 있더군. 너무 멀리 보지말라는 뜻이겠지. 자신의 발걸음, 자신의 반경,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
자기 이름이 자주 불리다 보면 우쭐해지기 쉬운데, 자기도 모르게 스텝이 꼬여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기 십상. 연극이 끝나면 조명도 꺼진다. 한덕수씨에게 하고 싶은 말, 각광을 조심하시라.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