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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말글살이 - 말은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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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4일 금요일 한겨레 22면

 

언어학적으로 '언행일치'라는 도덕률은 잘못된 표현이다. 뱉은 말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뜻의 이 말은 마치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말 자체가 뭔가를 하는 '행위'이다. 말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자가 중견수 쪽으로 희생 플라이를 쳤다고 치자. 중견수는 공을 잡자마자 홈을 향해 힘껏 송구한다. 3루 주자도 돌진한다. 포수와 주자가 동시에 부딪친다. 관중은 '세이프'라고 외치지만, 심판은 '아웃'이라고 선언한다. 수만명의 관중이 한목소리로 '세이프'라 외쳐봤자 소용없다. 둘 다 의견을 표현한 것이지만, 심판만이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때 '아웃'이라는 심판의 말은 그 자체로 행위이다.

 주례가 '지금부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라고 하거나, 부모가 '우리 애를 개똥이라 부르겠다'고 하거나, 선생이 학생에게 내일까지 숙제를 해 오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가 행위가 된다. 말로 새로운 질서와 관계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주기적으로 사람 간을 졸아들게 하는 국가. 이번 사태는 8년 만에 찾아온 개기일식. 그야말로 말의 폭력적 힘을 만끽(!)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세 권력기관이 돌아가면서 한마디 말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다. 대통령(행정부)은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 하고, 국회의장(입법부)은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 했다. 헌법재판소장(사법부)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한다. 말은 총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 심장을 관통하기도 하고 거센 풍랑보다 더 세차게 격동시키기도 한다. 말은 행동이다. 무섭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하도 비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기에, 너무다 당연한 결과를 기다리는 이 마음이 불안한 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마무리 투수의 마무리 능력을 알고 있지만 9회말 투아웃 만루에 볼카운트 투 스트라이크에 쓰리볼....볼 한 개만 남겨 놓은 순간처럼.... 가슴이 아침부터 쿵쾅쿵쾅 되고 있다.

4월 4일 11시. 점심시간까지 한 시간 당기기도 했다.

상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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