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입이 없는데도 말을 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 머뭇거림도 없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옷만 말하는 게 아니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자신의 취향, 직업, 습관, 가치관을 말한다.
옷은 말을 빼닮았다. 선택하기와 배열하기, 말이 여러 단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주어 목적어 서술어'라는 순서에 맞춰 배열하듯이, 옷도 상의에 맞춰 하의를 고르고 양말과 신발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말에 메시지가 담기듯, 옷에도 메시지가 담긴다. 오늘은 경쾌하게, 오늘은 단정하게, 오늘은 자신감 넘치게, 오늘은 슬프게, 오늘은 섹시하게···옷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침마다 '드레스 코드'를 정하는라 시간을 보내지.
요즘엔 대학을 불문하고 학과 점퍼, 일명 '과잠'(꽈점)을 많이 입고 다니더라. 이유를 물어보니, '편해서' '예뻐서' '소속삼이 느껴져서' '꾸안꾸라서(꾸민 듯 안 꾸민 듯해서)' 등 다양하다.(뭘 입을지 고민할 시간을 아껴주니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겠다!)
모든 유니폼(단체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별한다. 멀리서도 우리 편을 알아볼 수 있으니 편하다. 피아 식별. 구별은 경계를 나누는 것이라 까딱하면 차별로 바뀐다. 옷은 자신을 '표명'하는 것인데, 유니폼이 의심스러운 건 개인속에 집단의 이름을 게으른 방식으로 박아 넣기 때문. '나는 어디 소속이다.'(개인 속에 숨어 있는 집단은 끈질기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윤석열씨 앞에 'H대, K대, Y대' 따위의 '과잠'을 입고 나타난 20대 젊은이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왜 입혔냐'고 묻는 게 정확하겠지만.) '과잠' 입은 학생들을 맨 앞줄에 세운 이들은 '권력이 학벌에서 나온다'는 미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얄팍하고 얍삽하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