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다.
좀 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한 번 손에 잡힌 책들은 밤새 다 읽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런 시간들, 횟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가끔씩 그런 시간들은 찾아오곤 했다.
최근... 작년부터...
이순원 작가님의 '삿포로의 연인', '오목눈이의 사랑'
김연수 작가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금희 작가님의 '경애의 마음' 이 그랬다.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을 몇 편 읽었던 터라 책을 받아 보면서 기대를 하며 책을 펼치며 몇 장을 넘기면서,
한 번 책을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이라는 직감이 왔다.
힘들게 읽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장이 자연스럽게 그 내용에 동화되어 같이 빨려 들어가는 책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작가들이 몇몇 분 계시는데.... 이 최은영 작가님의 그 몇몇 분에 들어가지 않을까라고.
모든 사람들에겐,
개인적인 역사가 있으며 그 개인적인 역사엔 그 시대에 맞는 아픔, 사연, 일상들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이야기, 화자의 어머니, 화자의 어머니의 어머니, 화자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대한 이야기.
이혼의 아픔을 안고 새로운 직장이 있는 '희령'으로 떠나온 주인공.
20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 할머니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들의 이야기기도 하면서 우리들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엄마와 딸이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성별을 떠나 남자분들도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령"이 그들에게 그런 장소였듯이,
내겐 내 고향이 그런 곳이었다.
내가 태어났고, 나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계셨던 그곳.
감정선이 약해져서 그랬던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눈시울이 뜨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주인공 증조모의 어릴 적 모습에,
자꾸 아버지의 어릴적 이야기가 겹쳐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누군가에 나를 있게 만들어 주신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나의 역사를 보는 것도 같다.
이 책에선 할머니가 그러셨듯..... 내겐 아버지의 누나,
고모에게로부터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에게선 외할머니, 외할버지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나에겐,
고모가 들려주신 다섯 살짜리 아빠의 그 이야기의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다섯 살이셨으니까... 1948년 때의 일이다.
내 고향에서 할아버지의 집의 형편은 넉넉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쌀밥을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집이었고 남에게도 많이 베풀기도 하셨다고 한다.
불같은 성격의 할머니셨지만,
할아버지에게만큼은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잘하셨다고 한다.
그런 불같은 성격은 아버지가 꼭 닮으셨다고 고모는 이야기하신다.
그러다,
갑자기 급체를 하셔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모든 걸 체념하듯 가계는 급격히 기울어졌다고 한다.
그곳엔 할머니의 소개로 결혼한 사촌 여동생의 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리를 수확하셨다고 하니 봄쯤 되었을 것 같다.
고모와 아버지가 가셨는데 보리를 수확해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 댁도 형편이 좋지 않으셔서
같이 와서 먹으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렇게 먹는 모습을 바라다보며 먹고는 싶은데 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마루 기둥을 붙잡고 빙빙 돌던 동생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를 5년 전 할아버지 제사 때 오신 고모로부터 들었는데,
그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다섯 살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리고,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다음 날 아침 누님들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다.
아련하고 아픈 기억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누님들에 아버지에 대한 알지 못했던 이야기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어쩜,
그 아픈 마음을 좀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대구에 계신 고모님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힘들게 됐지만 다시 뵙게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지연'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기도 하면서,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어져 가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게 이어진 나의 선조들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으로 깊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