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다

"처지處地"

반응형

아침,

한겨레 신문 하종강 칼럼면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어 글을 남겨봅니다

.

"노인 목수 한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 신영복-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들은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도 각기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총리, 고위직 관리, 대기업의 직원, 그리고 중소기업의 직원까지.

솔직히, 어느 선까지 그들과 나의 관계속에서 그들과 나를 이해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그 이해관계의 충돌은 멀리서 찾을 필요없이 지금 내 옆에 있기도 하다. 그 처지를 어떤 입장에서 바라다보고 어느 높이의 위치에서 바라다보느냐에 따라 그 체감은 달라지기도 하다.

위의 글처럼, 집을 짓는 사람과 집에 살려고 하는 사람의 집 짓기에는 차이기 있기 마련이다. 그와 비슷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와 그 회사의 직원사이에도 극명하게 차이는 드러난다.어떻게 하면 저비용대비 고효율적인 인적관리, 제조능력만 생각하는 반면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쾌적한 환경과 근무조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각기 다른 생각들로 충돌하기도 한다.국내외적인 경기상황으로 힘든 요즘, 그 힘듦을 이겨내고자 대표와 직원들간의 일시적인 혹은 일부의 금적전인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도 그중에 하나이지만 그 희생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만 불만이 없기 마련인데 그 희생은 우리만 감내하고 있다.사람은 변하지 않으며, 자기 본인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은 절대로 남의 입장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서로가 이해하고 타협해야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