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주제의 에세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봐요. 그게 있으면 이름 없는 작가라고 해도 출간하려고 노력합니다.”
“독자가 관심 있어하는 주제인지를 봐요. 작가가 재미있게, 신나게 이야기하는 세계에 대한 글이라면 좋아요. 남들이 다 아는 내용에서 뭔가 하나 더 추가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고요.”
“작가 인지도를 먼저 봅니다. 인지도가 있는 작가라면 전작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를, 인지도가 없는 작가라면 저자가 잘 아는 분야인지, 글이 좋은지를 살펴요. 콘셉트는 평범해도 글이 좋으면 제목과 표지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글을 왜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하는가를 물어요.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 않은 글을 찾아요. 쓰는 사람의 개성은 드러나야 하지만 완전히 사적인 내용은 아니었으면 해요.”
이 글을 쓰면서 주요 한국문학 출판사의 편집자들에게 에세이 원고를 검토할 때 어떤 점을 주로 살피는지를 물었다.
위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팀장급 편집자 네 명이 들려준 답이다.
언뜻 제각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밑바닥에는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독자의 시선’이다.
편집자들은 ‘이 원고를 요약해서 소개문을 썼을 때 독자가 그 내용을 흥미롭게 여기고 전문을 읽어 보고 싶어 할까?’를 따진다.
한창 유행인 트렌드에 대한 책이라도 이미 나온 책들과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손이 가지 않는다.
이미 다 아는 내용 같아 보여도 마찬가지다.
유명 인사의 글이라면 일단 궁금할 터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강한 개성의 소유자는 분명히 눈길을 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읽으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전직도 글 쓰는 직업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니까 주변에 ‘저 사람이 에세이 책을 내면 좋을 텐데’ 싶은 지인들이 있다.
블로그에 글도 재치 있게 잘 올리고 대화를 나눠보면 참신한 생각도 많은 문필업 종사자들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다들 품고 있다.
그들 중 몇 사람을 꾀어 실제로 출간에 성공하고 그렇게 나온 책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을 꼬드기는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첫째,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에세이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둘째, 독자에 대해서 ‘내가 쓰면 그들은 읽는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 상당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 자기 문장에 자신이 있는 사람, 나름대로 대중을 상대로 일을 해온 사람이 오히려
그런 함정에 더 잘 빠지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에세이 책을 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얼마간 출판기획자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세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고, (불행한 현실이고 더러 오해도 있는데) 시시해 보이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다 보니
도전하는 사람도 많고 , 경쟁도 치열하다.
에세이는 수필이고, 수필은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라고 쉽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수필에 대한 그런 이해는 붓 필(筆)자와 따를 수(隨) 자라는 한자 조합을 그대로 풀이한 결과물인 것 같다.
나는 그게 수많은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 잘못된 정의라고 생각한다.
붓 가는 대로 쓰면 대개는 남이 읽을 가치가 없는 낙서가 된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풀이를 최대한 옹호하자면, 특별한 형식이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특별한 형식이 없다는 말이 주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닐 터다.
오히려 형식이 자유로운 만큼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시장조사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이 질문의 답을 얻는 길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에세이의 전부는 아니지만, 출발점을 제대로 잡으면 좋은 에세이를 쓸 가능성이 확 높아진다.
나는 에세이는 저자의 매력이 핵심이 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좋은 여행 에세이를 쓰려면 여행지 정보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잘 서술해야 한다.
좋은 서평 에세이, 좋은 영화 에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서평이나 영화평을 쓸 때에는 ‘육아하는 젊은 아빠가 본 영화들’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넣고 여러 글에 통일된 테마를
부여할 방법을 찾아보자.
여행, 독서, 영화 감상은 글감을 얻기 좋은 행위다.
경험하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과 느낌이 풍부하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므로, 나는 글쓰기 초보가 아닌 이들에게는 다른 글감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서평, 영화평이나 신변잡기 소재의 에세이야말로 정말로 ‘글발’이 좋은 사람이나 유명 인사가 아니면 책을 내기도
힘들고, 책이 나와도 잠재 독자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내 생각과 내면을 더 많이 드러내 줄 수 있는 글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먼저
살펴보기를 권하는 분야는 자신의 직업이다.
1회에서 이야기했던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장신모 작가의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도 직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아니어도 괜찮다.
어느 직업이나 하나의 세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들은 잘 모르는 세부사항이 있고, 긴장과 갈등이 있고, 고충과 애환이 있다.
성장하는 부문이라라면 성장하는 대로, 사양길에 있는 업종이라면 내림세대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쓸거리가 있다.
누구나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는 깊은 감정을 품게 된다.
우리는 일을 하며 일 때문에, 또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고 계획대로 진행된 작업에 보람을 느끼며 부조리에 분개하고 실패에 슬퍼한다.
거기에서 부글거리는 드라마가 나온다.
몇년 이상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대개 자기의 직업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과 태도를 지니게 된다.
그런 견해를 갖게 된 이유, 그런 태도가 퇴근하고 나서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자.
그 사연은 삶과 주면 세계에 대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특별한 취미나 다른 열정의 목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때도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매개로 나의 주관적 경험을 펼치는 일이다.
에세이는 무미건조한 설명문이 아니다.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겪은 강렬한 일화가 있다면 하나의 서사로 정리해보는 일도 추천한다.
그 일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고, 나는 그때 무엇을 느꼈고, 그 일은 어떻게 끝났으며,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큰 병을 앓았을 때의 일도 좋고, 적성에 맞는 직업과 직장을 찾아 방황하며 겪은 기억도 좋다.
아마 많은 경험이 투쟁 서사이기도 하고 성장 서사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이걸 너무 비장하게, 어떤 정형에 맞춰 쓰면 과거에 ‘수기’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던 신파적인 글처럼 보이게 된다.
이 경우에도 해법은 추상적인 서술을 피하고 생생하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은 절대로 신파로 보이지 않는다.
공감 에세이, 치유 에세이가 범람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사안을 찾아서 그걸 쓰는 게 맞는 접근법일 리 없다.
독자는 허위와 가식이 끼어든 글을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쓰는 사람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 모습으로 독자를 공감시켜야 한다.
그런 글을 쓴다면 놀라운 발견도 하게 된다.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을 언어라는 도구로 비치고 더듬어 파악하고, 그걸 정직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행위에는
대단한 심리적 치료 효과가 있다.
쓰는 사람 자신을 위로하는 글은 다른 사람도 치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