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시하는 장치가 항상 있다. 싫은 티를 내는 장치가 빠질 리 없다. 그중에서 ‘-랍시고’처럼 말하는 사람이 ‘나는 너의 행동이 정말 맘에 안 들어!’ 하며 못마땅해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어미도 드물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진다. ‘무슨 자격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랍시고’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하는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쓴다. ‘-랍시고’ 앞에는 자격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명사가 오는데, ‘가수랍시고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식이다. 가수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하는 행동(노래)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정치인, 연예인, 경제인, 교육자···,아니 이렇게 직업명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모든 직업이나 지위에 다 ‘-랍시고’를 붙여 못하지 못한다는 용맹스러운 자태를 뽐낼 수 있다. 하지만 ‘독재화’가 진행 중인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랍시고 카메라 앞에 섰으나’같은 말은 결코 입 밖에서 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랍시고’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명사에 다 붙일 수 있다. ‘그걸 변명이랍시고 늘어놓냐?’ ‘면담이랍시고 불러놓고는 사표를 쓰라네.’ ‘자전거 바퀴를 작품이랍시고 전시해놓았다.’ 게다가 '창업한답시고 회사를 그만두었다’처럼 동사 앞에서는 모양을 살짝 바꾸어 ‘-답시고를 쓸 수 있으니, '-랍시고'는 세상만사 모든 일에 자신의 못마땅을 표시할 수 있는 ‘만능 키’다.
타인에게 쓰면 비아냥이지만, 자신에게 쓰면 반성과 자책의 계기가 된다. ‘이걸 컬럼이랍시고 썼는가?’ (반성이 바로 되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