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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무례하다! 처음 전화를 걸면 자신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는 걸 당죄 모른다.
몇달 만에 연구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떤 젊은 녀석(!)의 얘기인즉슨,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려고 하는데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으니 편집간사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전화 거신 분은 누구신가요?" 그제야 깜짝 놀라며 어느 대학 대학원생 누구하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할 말만 다다닥 하는 전화를 받으면 부아가 치민다.
무례한 친구군!
그런데 문든,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는 나를 생각한다.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생각한다. 나처럼 비굴한 사람은 공손함이 몸에 베에 있어서 타인이 조금만 예의에 어긋난 언행을 하면 곧바로 알아차린다. 공손함이 조금 과하다 싶으면 금세 '굽신거린다'거나 '아양을 떤다'는 생각으로 옮아간다. 그러니 '뻣뻣함'이나 '무례함'을 느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예의 바름'이나 '공손함'을 느끼는 나의 감각은 나에게 비롯한 게 아니다. 마음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내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마음'은 사회가 쳐놓은 말의 질서를 따를 뿐이다. 이 질서는 노골적으로 편파적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공손함'과 '고분고분함'은 아랫것들만 갖춰야 할 미덕이다. 안타깝게도 윗사람은 '부드럽고 다정할' 수는 있지만, 공손하거나 고분고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말의 질서, 상징의 질서에 따라 이리 나풀 저리 나풀거리며 살뿐이다.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그 무례함은 사회가 정해 놓은 질서에서 벗어난 행동일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상대방에 대한 양보 혹은 배려가 없는 행동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언제인지는.....한문석변호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다, 정말 저렇게까지 폭력을 행사해야할 일인가? 상황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옆 차선에서 끼어들기 하는 차량을 끝내는 끼워주지 않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끼어들기 하는 차량의 운전자에게 시비를 걸다 마지막에는 엄청난 폭력을 행사했던 사건이었다.
나도 가끔, 운전을 하다보면 그런 얄미운 운전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끼어주지 않을때도 있지만....ㅠㅠ.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좀 더 필요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