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어른들’한테서 성교육을 받은 적이 단 1분도 없다. 누구에게도 콘돔 사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월경 주기와 가임기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성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타인의 삶도 존엄하다는 걸 깊게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저 학교와 사외 전체가 외치는 구호를 복창했다. ‘몸은 탐닉의 대상이 아니다. 드러내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근엄한 목소리로 ‘쉿, 숨기고 감추고 누른고 참아라. 나중에 다 알게 된다.’ 그럴수록 입으로 전해지는 말초적인 성 담론은 더욱 신뢰가 갔다. 성별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의식이 더해져 지금의 볼품없는 내가 되었다.
성교육은 몸을 은밀한 무엇으로 보지 말고, 당당하고 즐겁게 긍정하자는 것이다. 성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며, 생명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성교육은 인권교육이고 평등교육이며 공존의 기술을 배우는 민주교육이다.
금서가 그렇듯이, 유해 도서로 지정된 책들을 하나같이 다 읽어봄 직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면, '유해 도서'라 이름 붙여진 성평등 도서를 찾아 읽자.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세상의 모든 가족','나의 첫 젠더 수업','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같은 책들.
아이들에겐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가 있다. 분명히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긴 하지만, 어른들이 할 일은 나쁜 책을 골라 못 일게 하는 게 아니다. 좋은 책을 만날 기회를 늘려 줄 뿐. 기어코 '고등학교 졸업 전'에 '채식주의자'도 읽자.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