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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16)에세이 쓰기 - 3. 내 마음의 모양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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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6일 토요일 한겨레 18쪽

영국 팝스타 스팅의 노래 중에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라는 명곡이 있다.

영화 <레옹>의 주제가였던 바로 그 노래다.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내 심장의 모양'이나 '내 마음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회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의 모양 알아차리기'다.

에세이의 핵심은 저자의 개성이며,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키워야 에세이를 잘 쓸 수 있다고 지난 회에서 설명했다.

그런데 개성이라는 단어는 오해를 많이 사는 듯하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쓰이기도 하고, 통통 튀는 말솜씨라든가 특이하고 강한 성격과 연관되기도 한다.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 '마음의 모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의 모습이 다른데, 자기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쉬운 질문을 먼저 던져본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도에 무조건 반대하고, 튀어 보이는 일을 골라 저지르면 내 개성이 드러나고 발전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냥 튀어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그만큼 몰개성한 짓도 없을 것이다.

당사자의 내면도 점점 가볍고 하찮아진다.

그의 행동은 모두 타인의 시선을 향한 것이므로.

'난 남들과 다르다'고 선언한다고 저절로 나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답게 말하고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남과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몇몇 스포츠용품이나 탄산음료 회사들이 이 '나다움'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퍼뜨린다.

그들은 먼저 현대는 사람들의 개성을 없애고 규격화하려는 시대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런 집단적 억압에 맞서 일탈하는 것, 사적인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는 것이 개인 됨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기업들은 '생각하지 않고 느끼는 것, 저지르는 것'을 통해 남들과 달라지고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는 메시지를 애용한다.

이는 교묘한 궤변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개성을 버리라는 압박을 분명히 받지마, 한편으로는 '당신은 개성이 부족하다'는 억압 역시 함께 받는다.

적어도 지금 사회는 포드가 검은색 자동차를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던 시절보다는 개성의 수준이 높아졌다.

아침에 머리를 다듬고 입을 옷을 고를 때마다 우리는 그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 애쓴다.

그리고 사람의 개성은 기실 충동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의 충동이야말로 대개 비슷하다.

더운 날에는 비슷비슷하게 목이 마르고, 응원하는 팀이 억울한 판정을 당하면 함께 울분이 치솟으며, 매력적인 사람이 근처를 

지나가면 같은 방향으로 신경이 쏠린다.

생각 없이 느끼고, 저지르고 싶은 것을 그 자리에서 해치울수록 우리는 서너 개의 범주로 쉽고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값비싼 '신상' 신발을 신고 최신 유행인 아웃도어 의류를 걸치고 다니면 개성이 커지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트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 보자.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심리 상담이나 분석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필용도 없다.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횃불이다.

처음부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는 말자.

쉬운 질문, 오해 생각하면 누구나 답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부터 던져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세상에서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영화가 다섯 편이 넘고, 그 영화들을 다 똑같은 정도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분명히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그 답은 동굴의 어둠 속에 있다.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대려면 첫번째로 좋아하는 영화, 두 번째 좋아하는 영화도 알아야 한다.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네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덜 좋아하고 여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더 좋아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물론 올해의 순위가 지난해의 순위와 다를 수도 있고, 내년에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올해의 순위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그 순위와 이유가 지금 당신의 개성이다.

고작 영화 다섯 편과 그에 대한 설명이지만, 그게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영화 1~5위와 이유를 딱 두 줄씩이라도 써보라.

공동 1위나 공동 2위 같은 것이 없게, 분명하게 순서를 매겨보라.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전보다 더 잘 알게 된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발견한다고 할 수도 잇고 발명한다고 할 수도 있다.

자, 이제 조금 더 어려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스스로 성인이라고 느낀다면, 성인이 되 날은 언제인가? 만 20세가 된 그날이었나? 아니라면 언제인가? 왜 그날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살펴야 하고, '어른'이란 무엇인지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게 어른인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어른인지, 세상의 씁쓸한 면을 알아차리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당신의 답이 당신의 개성이다.

개성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결국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과 견해-인생관, 세계관-를 쌓는 일이다.

이런 질문 후보는 무수히 많다.

글쓰기 훈련의 재료로도 그만이다.

'가을'이라든가 '추억'같은 제목보다는 답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개인적인 사연을 치열하게 풀 수 있는 제목으로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를테면 '나를 성장시킨 경험 세 가지', '오늘 내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 네 개'같은 식이다.

일기를 쓰는 것은 물론 아주 좋은 연습이다.

그런데 일기장은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대상 이상이 될 수 있다.

'난 오늘 종일 우울하다'라고 썼다면 그 뒤를 '왠지 모르겠다'는 맥 빠지는 문장으로 마무리하지 말고 횃불을 들고 동굴 더 깊은

곳을 밝혀보자.

어쩌면 아주 시시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며칠째 비가 와서 그렇다든가, 어쩌면 자신의 좀스러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촌이 강남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아침에 들어서 그랬다는가.

모호하고 모순되는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모호함과 모순됨의 모양을 살피라는 것이다.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보부아르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여행기에 이렇게 적었다.

'미국이 내 마음을 사로잡지 않은 날이 없고, 또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날이 없다. 내가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열렬히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건 확신한다.' 

보부아르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매우 강렬하며, 그게 선망과 환멸이 섞인 모양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알수록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냥요"같은 대답을 점점 안 하게 된다.

좋아하는 영화 다섯 편의 순위를 매기는 데 사용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좋아하는 책 다섯 권으르 고르는 데에도 적용된다.

방금 보고 나온 신작 영화에 대해 흡족하거나 언짢은 까닭에 대해서도 당신만의 의견을 보다 자세하고 정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주관이 뚜렷한 사람, 자기 색깔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쓸수록 당신은 더 개성적인 사람, 자기 세계와 무게중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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