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형 논픽션에서는 비교적 주인공을 정하기 쉽다.
평전이라면 글을 쓰기 전부터 주인공이 정해진 셈이고,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라면 가장 문제적인 인물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골라 주인공으로 삼으면 딘다.
이때 인물, 사건 , 배경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인물 한두명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펼치다 보면 다루는 사건의 폭이나 무대의 범위를 얼마간 축소하거나 잘라내야 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스토리텔링이라는 렌즈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생기고 만다.
이게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원고가 산만해진다.
보여줄 거리가 많더라도 초점부터 제대로 잡아야 독자가 몰입할 수 있다.
2017년도 아마존 ‘올해의 책’ 종합 1위를 차지하고, 같은 해 미국의 여러 매체에서 논픽션 부문 최고의 책으로 뽑힌 <플라워문>(프시케의 숲)을 예로 살펴보자.
이 책 한국어판에는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그리고 FBI(미국 연방수사국)의 탄생’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다.
실제로 읽어보면 그런 부제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1920년대 미국의 끔찍한 범죄 스캔들을 소재로 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오세이지 부족 인디언 여성 몰리가 불안에 빠지는 것이 책의 시작이다.
언니 애나가 사흘 전부터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한편 몰리의 동생 미니도 3년전, 27살이라는 한창나이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은 바 있다.
몇년 뒤 연방수사국을 창설하게 되는 존 에드거 후버가 수사관 톰 화이트를 파견한다.
이후 독자들은 톰 화이트의 뒤를 쫒아가며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플라워 문>을 다 읽고 책 내용을 요약하면서 톰 화이트라는 인물을 아예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이 책 번역판의 신문 서평에는 이 인물이 아예 나오지 않는 기사도 여러건 있다.
그러나 저자 데이비드 그랜이 관련 사실들을 그저 시간순으로 서술하지 않고 추리소설 같은 구성으로 엮은 뒤 톰 화이트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효과는 엄청나다.
화이트의 시선에서 벗어난 팩트들의 이야기 내 비주이 줄어드는 것을 무릅쓸 만큼.
<제이티비시>(JBTC) 양원보 기자의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 (위즈덤하우스)는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 종로구에서 노무현과 이명박 후보가 맞붙었던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책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다음날 부산의 노무현 사무실에서 시작하는데,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집중해야 할 중심 사건은 15대 총선이다.
두 주인공에 대해 1990년 이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안다 하더라도 중간에 짧게 넣어주는 것 이상의 욕시은 부리지 않는게 현명하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주인공을 선택하고 그 인물의 시점에서 사건을 전개하라는 조언은 그 인물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주인공이든, 저잔든 사안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 바가 있다면 검증하고 반론을 소개하는 것이 논픽션의 기본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론을 구하기 어렵다면 저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주장의 한계를 짚어줘여 한다.
이런작업은 논점을 흐린다기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보게 해 글에 깊이를 더해 준다.
촬열장에 조명대를 하나 더 세운다고 여기자.
기획형 논픽션, 특히 르포르타주라면 주인공을 설정하기가 좀 더 까다롭다.
취재와 탐사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기 1인칭 주인공으로 나서야 하는데, 르포 스토리텔리과 주인공의 역할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기술이 쉽지 않다.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 나는 르포 스토리텔링을 귀납식(상향식)과 연역식(하향식), 크게 두가지로 분류했다.
모든 르포가 이 분류법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르포 작가들이 자기가 쓰려는 글의 뼈대를 세우기에는 이 도구가 제법 유용하다.
현장들을 보여주면서 책이 주장하려는 바와 문제의식을 서서히 떠오르게 한다면 귀납식, 책 앞머리에서 문제를 먼저 제기하고 관련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답을 모색한다면 연역식이다.
자신이 쓰려는 원고가 현장이 풍부하다면, 실태가 충격적이라면, 고발에 목적이 있다면 귀납식으로 쓰는 게 유리하다.
반면 문제의식이 참신하고 해법에 관심이 많다면 연역식이 어울린다.
애널리스트 출신 작가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캘리온)는 귀납식 르포의 대표 사례라 부를 만하다.
이 책의 원제는 ‘불공적 무역’이다.
선진국 국민들이 손쉽게 구입하는 제품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생산국 국민들은 어떻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추적했다.
우드먼의 방법론은 간단하다.
스마트폰 부품 재료에서부터 양귀비에 이르기까지, 생산 현장에 가서 자기 눈으로 직접 살펴보고 체엄하는 것이다.
우드먼의 주장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니카라와 어춘의 청년들이 제대로 된 장비 없이 바닷가재를 잡다가 영문도 모르는 채 잠수병에 걸리는 대목을 읽다 보면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공정무역 인증의 기만성을 고발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장 묘사기 있기에 ‘건강한 자본주의 만들기 위한 8가지 방법’이라는 말미의 결론에 힘이 실린다.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역시 같은 구성을 취한, 추천하고픈 르포다.
젊은 저자가 꽃게잡이 배, 편의점, 주유소,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 등 2010년대 한국의 ‘밑바작 직업’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썼다.
책 앞뒤 저자의 제언도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고, 저자의 글맛도 대단한 수작이지만, 이 책 역시 핵심은 생생한 현장성에 있다.
귀납식 구성의 르포는 픽션으로 치면 모험소설과 비슷한 구성이고, 1인칭 화자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그는 위험한 현장을 찾아가거나 무모한 실험을 벌인다.
경영대학원 교수 두 사람이 온갖 자기계발 지침을 1년간 체험하고 쓴 <자기계발을 위한 몸부림>(매일경제신문사), 한 가족이 중국산제품 없이 1년간 살아본 체험기를 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엘도라도)같은 책도 이에 해당하겠다.
결론은 책을 펼치기 전에도 대체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재미있다.
자신이 쓰려는 르포가 현장이 생명이며, 이미 점찍어둔 현장이 여러곳 있다면, 특히 그 현장들을 병렬형으로 연결해서 써도 충분하다면 귀납식 구조를 검토해보기 바란다.
여러 사람이 합심해서 팀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 내기에도 적합하다.
다만 이 방식은 성실하지 안게 썼을 때 그만큼 티가 더 잘 드러난다.
자칫 잘못하면’글을 조립해서 쓴 것 같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연역식 구성 르포에서 1인칭 화자는 탐정이 된다.
그는 글 초입에서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왜 현대 사회는 외향적인 사람을 찬양하는가?’ 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관련 현장을 찾아 다닌다.
수전 케인의 책 <콰이어트>(알에이치코리아)가 그런 책이다.
케인은 성격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는 세미나나 하버드 경영대학원 같은 현장을 찾아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과거와 현대의 자기계발서와 광고들으르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현대 사회가 어떻게, 왜, 외향적인 성격을 숭배하고 내향적인 성격을 바꿔야 할 단점으로 몰고 가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김민석 작가는 <훈의 시대>(와이즈베리)에서 ‘한 시대를 포위하고 있는 언어의 기록’을 찾는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가 추적하는 것은 학교의 교훈, 회사의 사훈, 아파트 단지의 브랜드 이름 등 주변에서 알 게 모르게 우리를 규정하거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제하는 말들이다.
김 작가는 교훈을 바꾸려다 실패한 학교, 재미있는 사훈으로 화제가 된 회사를 찾아가고, 유명 아파트의 광고 모델과 카피를 분석한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연역식 구성 르포가 통찰력 있는 답을 제시하면 독자들은 짜릿한 느낌마저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귀납식은 귀납식 르포에 비하면 근거를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잘 쌓는 데 그만큼 힘이 더 든다.
또 주장에 걸맞은 현장들을 찾는 취재 과정도 쉽지 않다.
이런 관념적 구성에서 현장이 없으면 글 전체가 학술 논문처럼 딱딱해진다.
문제의식을 현장과 연결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더 살펴보도록 하자.
쓰다
장강명의 책 한 번 써봅시다/(20)논픽션 쓰기-2.주인공과 스토리텔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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