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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⑬소설쓰기 -5.소설 쓰기를 위한 취재 (2020년 4월18일 토요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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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담은 글이 한국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텍스트, 언론 보도,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유행 같은 재료를 바탕으로 쓰는 글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몹시 아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강연장이나 사석에서 "취재를 어떻게 하시나요?" 하는 질문을 받으면 종종 답이 길어진다.

여기서 몇가지 요령을 공유하고 싶다.

글을 쓰려면 무조건 자료를 찾고 취재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려는 건 아니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이 다른 누구보다 더 풍부할 수도 있고, 공상과학소설(SF)이나 판타지처럼 현실세계와 접점이 덜한 장르도 잇다.

그러나 대개는 취재를 바탕으로 글을 쓰면 두가지 커다란 이점이 생긴다.

소설과 비소설에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

 

 

우선 두루뭉술하지 않게, 추성적이지 않게 쓸 수 있다.

소설에서 구체적인 상황과 설정은 생생함으로 이어진다.

그런 생생함이 있으면 쉽게 독자를 끌어들이고 설득할 수 있다.

비소설이라면 정확한 사례와 근거가 같은 힘을 발휘한다.

다음으로, 상투성을 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건, 어는 현장이건, 직접 만나고 부딪쳐보면 늘 복잡하고 새롭다.

작가가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사연은 도식적일 수 없다.

조직 폭력배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회칼을 들고 다닐 거라 상상한다.

실제로는 번듯한 명함을 들고 다닌다.

정치인들은 만나보면 대부분 깊이도 있고 인간적인 매력도 많다.

그럼에도 많은 초보 작가들이 취재를 부담스러운 일로 여기는 듯하다.

자기 손발로 지식을 수집하는 법보다 교과서를 빨리 소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우리 교욱도 문제인 것 같고,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도 바뀌었으면 한다.

그런데 사실 취재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대단한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 내게 취재 요령을 묻는 작가 지망생들 중에는 형사를 취재하는 법이라든가 기업 관계자를 섭외하는 것 같은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아쉽지만 그런 건 없다.

속된 표현으로 매번 '맨땅'에 '헤딩'이다.

그런데 그런 헤딩도 자꾸 해보면 실력이 늘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비소설 취재라면 몰라도 소설 취재에서는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중 한 명만 섭외하면 된다.

게다가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런 요청에 쉽게 응해준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 속으로 겁이 났다.

'난 이제 기자도 아니고 그냥 백수인데 퇴짜 맞는 거 아닐까'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섭외 성공률은 신문기자 시절보다 높았다.

사람들의 반으도 훨씬 더 부드러웠다.

기자 시절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내밀한 고백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기자 선후배들에 해주면 다들 놀란다.

과거의 나처럼 기자 명함이 대단한 무기라는 착각에 빠져 있던 거다.

실제로는 정치인이나 홍보업계 종사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기자와 대화하기를 꺼린다.

자기 이야기가 기사화된다는 건 큰 부담이니까.

게다가 기자들은 보통 어떤 사람이 뉴스 가치가 있는 날, 즉 그가 사고를 당했거나 정책을 준비 중이라 제일 바쁜 날에 불쑥 연락해서 얘기를 들으려 한다.

반면 소설을 위한 인터뷰는 필요한 부분만 참고하려 하고 다른 사항은 적당히 고쳐서 쓸 거라고 미리 말해두면 요청받는 쪽에서도 마음이 가볍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상대가 있으면 말하는 쪽도 신이 나기 마련이다.

대학 국문과,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재 연습'이라는 과목을 가르칠 때 첫 수업 시간이면 늘 같은 과제를 내줬다.

부모님이나 가장 친한 친구를 인터뷰해서 그들이 살면서 겪은 가장 무서웠던 일, 혹은 가장 슬펐던 사건에 대해 듣고 그걸 육하원칙에 맞춰 에세이로 써 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인터뷰이의 개인 정보는 필요 없다고 미리 말했다.

다음주 리포트를 제출하는 학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그들이 가져온 결과물 중에는 범죄나 죽음과 관련한 충격적인 경험담도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상대에게 그게 언제였는지, 어디서 벌어진 일이었는지 캐묻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숙제였으니 질문을 던져야 했고, 놀랍게도 그런 어려운 질문에 상대는 답을 해주었다.

그 과정을 겪어보라는 게 과제의 취지였다.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보면 '취재해볼 만하네'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제출받은 리포트를 놓고 토론을 했다.

육하원칙이 잘 지켜졌는지, 어떤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각자 의견을 이야기했다.

사실 비소설이 아닌 소설용 취재라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허구로 덮어씌울 내용들이니까.

중요한 것은 '어떻게'와 '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터뷰어들은 종종 답을 듣지 못했는데도 들었다고 오해한다.

어머니에게 언제 제일 행복했느냐고 묻는 간단한 인터뷰를 떠올려보자.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네가 태어났을 때지." "왜?" "자식이 태어난 거니까 당연히 기쁘지." 말로 들을 때에는 "왜"에 대한 답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글로 써보면 거기서 질문을 더 던졌어야 했음을 알게 된다.

'김 여인은 자식을 낳았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기쁜 때였다, 왜냐하면 자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쓰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노산이어서 불안했다든가, 아이를 낳는 게 오랜 소원이었단든가 하는 보충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인터뷰이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에서 중요한 정보가 빠져도 귀에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게 들린다.

자신에게는 익숙한 업계 상식이나 사건의 맥락을 당연히 질문자가 알 거라고 생각하고 답변자가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어는 나중에 글로 쓸 때 가서야 '이거 왜 이런 거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하고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인터뷰 현장에서 이런 정보들이 누락되지 않게 하려면 준비를 잘해야 하고,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한다.

때로는 취재를 당하는 사람 자신이 '왜' 나 '어떻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잇다.

작은 빵집의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에 대한 거센 토로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 던져야 할 질문은 옆 빵가게 주인의 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왜 이 작은 골목에 빵집이 나란히 들어서게 되었는가'일지도 모른다.

물어야 할 질문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놔야 한다.

'아는 선배가 국회의원 보좌관인데, 혹은 연예인 매니저인데, 혹은 물리학자인데, 이번 주말에 만나서 그 업계 밑바닥 이야기를 들어야지' 같은 자세로는 절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인터뷰 한두번으로 그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안이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아예 그 분야를 모르면 기초 취재는 필요할 터다.

그때 기초 취재의 목적은 오로지 다음 단계의 취재 범위를 어떻게 더 좁힐지 탐색하는 데 있어야 한다.

'국회가 배경인 정치물을 쓰겠다'에서 '어떤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는 과정을 쓰겠다'거나 '어떤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막전막후를 그리겠다'정도로까지 말이다.

그런 전략 없이 무작정 덤벼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불필요한 디테일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전문 용어, 업계 은어 같은 것들이 그렇다.

취재를 하는 목적은 위에 적은 대로 독자에게 생생함과 설득력을 주기 위해서이지,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칭찬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여기까지 취재했어요'하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으 꾹 참자.

비소설이 아니라 소설이라면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과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가 충돌할 때 전자를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재를 해야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한가지.

가끔 자신이 무엇을 써여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미룬 채 자료 조사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본다.

종일 인터넷 검색만 해놓고 진척이 있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

자료 조사는 빠르게 마쳐야 할 집필의 전 단계이지, 절대로 집필 그 자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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