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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영화

9. 맨부커 수상작,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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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연작소설 중 중간 몽고반점을 먼저 읽어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의 세 중편 소설이 따로 읽게 되면 각기 독립된 내용이라고 느껴지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묶어 놓으면 신기하게도 하나의 장편소설로 연결되어진다.

 


한강작가의 의도였던, 아님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그 이전의 '내 여자의 열매' 단편소설 중 아내가 식물로 변하고 그 식물을 화분에 심는 남편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 혹은 마무리, 확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글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기, 작가는 타이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에 큰 고통으로 손으로 쓴 글을 다시 타이핑으로 재작업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둘 정도라고 했다. 얼마나 글쓰기에 대한 집념, 열정과 근성이 있어야만 이 정도의 상태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쉽게 보는 모든 것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상상하지도 못하는 노력이 뒤따른 다는 것을. 그걸 열정이라 부르겠지.
 
세 개의 이야기.

영혜의 남편과 인혜의 남편의 시선으로 그리고 나무 불꽃에선 3인칭 시선으로 인혜를 보여주고 있다.

꿈을 꾸고 난 뒤부터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이야기를, 그것이 작품에 대한 열정이었는지 어떤 표식(몽고반점)에 대한 본능이었는지 금기시된 관계를, 영혜, 제부, 남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혜의 시선으로 설명 혹은 자신의 처지를 구하고 있는 듯했다. 독백과 이탤릭체로 영혜의 심리를 말하고 있지만, 영혜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직접적인 이야기가 없어 영혜의 상태?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꿈과 어릴 적 자기를 물었던 개를 끔찍하게 죽여 어떤 죄의식도 없이 먹었던 그 때의 기억이 그녀를,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분명, 그녀는 고기를 단지 먹기 싫었던 것이지 목적과 목표가 있던 채식주의자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인혜와 영혜의 공통적인 성격중에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인내가 혹은 그 타인에 대한,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포기' 또는 '무관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릴적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소녀가 어쩔 수 없이 형성된 성격이지 않을까.

인혜가 이야기했던, 고기를 억지로 먹였던 그녀의 아버지를 막았다면 또한 그녀의 동생이 손목에 칼을 대지 않았다면 그 처제를 업고 병원으로 인혜의 남편이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금기된 관계, 영혜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지 않았을까. 모든 관계들이 끊어지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추문들이, 포기할 수 없는 동생의 보호자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바라보는 그 처한 상황이, 못 내 견뎌내고 있고 쓰러질 것 같은 그녀에게 어떠한 기댈 수 있는 위로가 있을까?ㅠㅠ

왜... 나무였을까?

최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이야기도 꿈을 통해, 그 꿈속의 검은 통나무들로 시작되었듯이.
 
내겐 열정이 부족하다.

그 열정을 열망하고 있지만, 그 열정에 대한 끈기와 인내가 없다.

한 번만이라도 그 열정에 대한 끝을 마주해 보고 싶다.

그 결과물이 무엇이 되었건, 그 열정에 대한 부작용이 무엇이 되었건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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