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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말글살이 - 밥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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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금요일 한겨레 22면 오피니언 하단

 

'밥맛'은 밥에서 느껴지는 맛이다. '장맛'이 장의 맛이고, '물맛'이 물의 맛이듯이, '밥맛'의 뜻도 쉽고 뻔하다. '밥맛이 좋다'는 밥을 씹을 때 느껴지는 맛이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뭐든 가까이 있으면 물들기 마련인가 보다. 밥에서 느껴지는 맛은 밥 먹는 사람의 의지로 옮아간다. '밥맛이 당기다' '밥맛을 잃다' '밥맛이 떨어지다' 따위에 쓰인 '밥맛'은 밥(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의지를 뜻한다. '식욕'과 비슷한 말이 된다. 이런 쓰임은 '입맛'과도 통한다('입맛'은 '입에서 풍기는 맛'은 아니다. 그건 '입냄새'!). '입맛'은 음식이 입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맛에 대한 감각인데, 그 감각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의지로 쉽게 바뀐다. 그러다보니 '밥맛이 없다, 입맛이 없다, 식욕이 없다'는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가 흐르는 밥은 반찬 없이 먹어도 입맛이 돌고 눈맛도 좋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밥맛이다'라고 하면 밉살스럽고 아니꼽고 정떨어지며 재수 없고 꼴불견인 사람을 나타나게 되었다. '밥맛이 없다' '밥맛이 떨어지다'라는 표현에서 부정적인 뜻의 뒷말을 자르되, 부정적인 뉘앙스의 짐을 애꿎은 '밥맛'에 몽땅 들씌운 결과이리라.

 정치에 무지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현 지배 세력은 밥맛이어서 졌다. 정지인의 말은 행하기와 직결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말이 실행에 옮겨질 것임을 '믿게'함으로써 힘들 획득한다. 행하기와 연결되지 않은 말하기는 허풍일 뿐이다. 지배 세력의 패배는 결집한 집단의 크기가 쪼그라들어서였겠지만, 행하기를 배반한 말하기만을 일삼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치는 말이 전부이지만, 말뿐인 정치는 밥맛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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