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혼자 배실배실 웃을 때가 있다. 삶이 허하고 웃음이 부족한 사람에겐 직방이니, 나를 따르라. 간단하다. 말을 만나면 '말 그대로'의 뜻을 생각해 보는 거다. 이를테면 옷가게에 있는 '탈의실' 앞에서 '말 그대로'의 뜻을 생각해 보는 거다. 말 그대로라면 '옷 벗는 곳'이니 안에 들어가 옷을 훌러덩 벗고 나서 벌거벗은 채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어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사람들 참 말 안 듣는다!). 왜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뿐만 아니라, '입기'(착의)까지 하냔 말이다.
어디 탈의실만 그러겠는가. '떡볶이'는 말 그대로만 보면 '떡을 볶은 음식'이다. '떡볶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호기롭게 이 음식을 만들겠다며 프라이팬에 떡을 올려놓고 볶는 모습을 상상하면 풉, 웃음이 나온다. '떡볶이'란 말엔 담기지 않은 빨간 고추장, (875원짜리) 대파, 함께 들어 있으면 더 신나는 어묵이나 만두, 달걀을 어찌 알겠는가(떡도 시루떡이나 인절미, 꿀떡, 송편인 아닌, 가래떡).
말은 말로 잡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인 말은 없다. 사전은 말로 말을 잡아보려는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지만, 인간의 경험을 포함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맛을 표현하는 '달다, 쓰다, 맵다, 시다, 떫다'를 이해시키려면 경험의 사례를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달다'는 '꿀이나 설탕'을, '쓰다'는 '한약, 소태, 씀바귀, 쓸개'를, '맵다'는 '고추나 겨자'를, '시다'는 '식초나 설익은 살구'를, '떫다'는 '설익은 감'을 먹었을 때의 맛과 같은 것이라 풀이한다.
말은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말 너머에 있는 문화와 경험이 말을 떠받치고 있다. 말은 그것을 촉발하는 방아쇠일뿐. '말 그대로'는 없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