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러고 있나 도대체 매번.'
대개의 사람들에겐 이런 식의 자기 분열적 사고가 습관이다.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어'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조차 실제로는 그렇다.
'자기'를 드러내면,
그러니까 내 감정, 내 말, 내 생각을 드러내면
바로 싹이 잘리거나
내내 그림자 취급만 당하고 사는 삶은
배터리가 3퍼센트쯤 남은
방전 직전의 휴대전화와 비슷하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국가의 국경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국경 수비대가 하는 일은 사람 사이의 경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키는 일이 어렵다.
그 경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나도 지키고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한결같이 공감받고 공감하며 살길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기 힘든 건
공감까지 가는 길목에서 여러 허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 허들을 잘 넘어야 마침내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그토록 원하는 공감받고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허들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허들이 감정에 대한 통념이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 게임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두 번째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그래.
"요즘 너의 마음은 어떠니....?"
난 주저한다.... 요즘 내 마음이 어떤 거니.
'요즘 난 마음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마음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은 내가 하고... 그러려고 하는데 그들은 내 마음과 같지가 않더라.
점점 힘들어지는 회사...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
이러다 완전히 방전되어 소생이 힘들어지는 건 아닌지 몰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연 없는 이들이 없듯이 내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연이 있고 상처가 있다.
그 상처로 인해 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된 것은 아닌지.
아직도,
난 큰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어린 그 아이에게 그 아이가 무엇을 알아듣고 행동을 한다고 그리 다그치며 화를 냈는지.
그래서 그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되고서도 내가 큰 소리로 화를 내면 지금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한다.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 어릴 적 그때의 상황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하곤 한다.
그 어릴적 기억에 대해 큰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아빠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너무도 부족했던 아빠였어.
앞으로는 좀 더 너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너의 존재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