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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상

말글살이 - 부정문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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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이 기발한 문장을 떠올리고 나서 얼마나 안도했을까. '오염수 방류의 계획상에 과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줄여서 '문제는 없지만, 찬성하는 건 아니다.'라는 부정문은 소극적이고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한다. '~가 아니다', '~이지 않다', '~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그건 아닌 모든 가능성을 허용한다. 세상사가 이분법적으로 확연히 나뉘지 않으므로. '너를 싫어해' 대신 '너를 좋아하진 않아'라고 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너를 존경해' 또는 '너를 사랑해'라는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길수록 나는 안전해지고 책임은 옅어진다.

 당신도 이런 적이 있을 거다.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하지만 사지 않을래."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는 사람보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더 많다. 돈이 없어서, 비슷한 옷이 있어서, 먼저 사야 할 게 있어서. 판단의 근거는 무한대.

 잔머리를 굴려 '찬성하지 않는다'는 고급 표현을 썼지만, 그 판단의 근거가 '찬성한다'는 뜻으로 읽히기 충분한 '과학과 기술의 문제'를 들이댄 게 잘못이겠지. 차라리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밀어붙이고 있고 우리는 그걸 막을 힘도 의지도 없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랬다면, 약소국의 설움을 함께 나누며 해양생태계의 궤멸을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말의 실패. 정치의 실패.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국익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보수 혹은 진보라는 이념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대와 설득... 그리고, 그래선 안 되겠지만 압력이라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반성하지 않는 역사, 사과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들과는 가까워져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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