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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상

말글살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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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8일 한겨레 22면 하단

 

영화 '파묘'에 나온 '그냥 부자'란 말이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냥'은 철학적 무게가 느껴지는 부사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뭉뚱그려 말해 '그냥'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있지 뭐." "이거 저쪽으로 옮길까?" "아니, 그냥 그 자리에 둬." 변함없이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 이유나 조건 없이'라는 뜻이 있다. "어쩐 일로 연락을 했어?" "그냥." "왜 날 좋아해?" "그냥 좋아." "그 일을 왜 하는가?" "그냥 한다오." 복잡한 계산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사랑과 우정과 환대의 세계는 반대급부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그냥'의 공간이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공간.

 하지만 이 말이 '그냥 부자'처럼 사회경제학적 맥락에서 쓰이면 달라진다. 태생이, 유전자가, 운명이 부자로 살도록 정해진 사람들. 그들에게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이유를 숨기는 것일 뿐. '그냥 부자'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인과의 그물망을 외면한다.

 '그냥 부자'란 표현은 두 의미가 겹쳐 있다. 날 때부터 쭉 변함없이 그대로 부자란 뜻도 있고,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뜻도 되겠다. 하지만 물질적 부분만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현상과 존재는 그냥 원래부터, 본유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겨난 건 하나도 없다. 무수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쌓이고 맺어져 결과를 낳는다. 원인없는 결과는 마치 한쪽 끝만 있는 막대기처럼 불가능하다. 그것을 망각하거나 외면하려는 건 우돈하거나 놓치고 싶지 않은게 많아서이다.

 '그냥 부자'는 없다. '그냥 가난뱅이'가 없듯이.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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