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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1일 금요일 한겨레 22면 하단

참으로 반시대적인 단어다. 무작정이라니. 이제 우리는 '무작정'의 정서를 잃어버렸다. 당신은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무작정 기다린다고요? 왜요? 전화나 문자를 하면 되는데?' 이젠 무작정 뭔가를 하면 안 된다. 미리 작정하지 않고 뭔가를 무턱대고 해 보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현대 문명은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알기 위해 달려온 것인지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던데 웬걸, 요즘 우리는 '한 치 앞'을 잘 안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한 치 앞을 보여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고 우리는 그에 맞춰 계획하고 행동한다.

 나는 지금 273번 버스가 전 정류장을 지나 3분 뒤에 온다는 것을 '안다'. 전속력으로 뛰어가면 탈 수 있겠다. 뛰자! 예약한 택시가 8분 후에 온다고 하니 하던 얘기 마저 하고 가자. 언제 올지 모를 택시를 길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스마트한'일인가. 시간을 이리도 알뜰하게 쓰게 되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만 잘 모아도 하루에 1시간, 일주일이면 7시간, 한달이면 28시간. 여분의 하루가 생긴다.

 도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기다림'의 정서도 확연히 달라졌다. 기다림의 끝이 어딜지 모르는 기다림이 있었다. 이젠 없다. 지금은 끝이 보이는 기다림. 오지 않는 사람보다 기다리다 돌아서는 사람이 더 미안한 기다림이 있었다. 이젠 없다. 그랬다간 맹꽁이란 소리를 듣겠지.

 습관은 뭔가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인데,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라고 할만한 것도 많다. 그중 최고가 '무작정 기다리지 않기'. '무작정 기다림'이 사라지면서 답답함에선 벗어났지만, 조금 더 분주해졌고, 조금 많이 무례해졌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

 

기다림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그 기다림이 생활하는데 편리한 기능으로 그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 예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면 좋은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기다림이 '무작정'의 시간일때도 필요하다.

편리함과 예측성을 떠나, 특히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무작정의 기다림이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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