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0년 9월 26일 토요일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글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퇴고와 투고 요령까지 알아봤다.
그다음을 얘기해보자.
‘작가로 살기’ 혹은 ‘작가로 살아남기’다.
조금 허세를 섞어서 ‘작가적 전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말할 것도 없이 작가에게 최고의 전략은 작품이다.
일본의 소설가 모리 히로시는 자기 인세와 부수입을 공개한 책 <작가의 수지>에서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고 썼다.
100퍼센트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교과서 중심으로,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라’는 조언처럼 너무 당연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
좋은 작품을 쓰는 일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인 작가들이 알아두면 좋을 요령과 마음가짐을 몇 줄 보탠다.
첫 책 출간을 앞둔 신인 작가의 마음은 그보다 더 부풀어 오를 수 없는 상태다.
드디어 작가가 되었다는 감격도 벅차고, 독자 반응도 궁금하다.
인세 계산도 해보고, ‘10만 부가 팔리면...., 100만 부가 팔리면...’하는 상상도 한다.
그런 신인 작가드르 중 대부분은 조만간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몇 달 뒤 상황은 높은 확률로 이러하다.
책은 민방할 정도로 팔리지 않았다.
지인들조차 책을 사주지 않은 것 같다.
독자 반응은 없거나, 있다 해도 짧고 퉁명스럽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를 확인하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책 이름을 넣는 일도 지쳤다.
출판사는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을 접은 듯하다.
아니, 애초에 관심이 있기는 했나....?
이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어쨌든 첫 책을 내는 데 성공했다면 가장 힘든 구간은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다음 책을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다.
한국의 독서 생태계 현실은 서글프고 기이하다.
일단 유명해지면 대충 써도 책이 팔린다.
안 유명하면 안 팔린다.
작가 지망생이 작가가 되는 게 가장 힘들다.
첫 책을 낸 신인 작가가 두 번째 책을 낼 기회를 잡는 게 그 다음으로 힘들다.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설령 원고가 시시하더라도 다음 책을 낼 기회를 비교적 손쉽게 얻는다.
무지막지한 부익부 빈인빈 시장이다.
한국에서 ‘대형 출판사’라고 해봤자 연간 매출액이 2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난 해 단행본 출판사 기준 매출액 1위였던 문학동네의 매출액이 300억 6100만 원이었다.
산업계의 시선으로 보면 일개 중소기업에 불과하다.
절대다수의 작은 출판사들은 영세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1년에 수십 종씩 신제품(책)을 낸다.
그런 형편에 신인 작가의 책 한 권에 대해 출판사가 홍보나 광고를 얼마나 힘 있게 할 수 있을까.
대형 출판사에서는 대개 내부적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중점 도서를 정해 거기에 마케팅 자원을 집중한다.
작은 출판사는 계약 한 책들을 내기도 바쁘다.
어느 쪽이건 독자 반응이 없는 책, 그것도 나온 지 몇 달이 지난 책을 붙들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니 신인 작가라면 ‘내 책은 내가 홍보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안타깝고 화도 난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다.
아마 첫 책을 낼 때쯤 출판사에서 “곡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시라”는 당부를 듣게 될 거다.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거나 좋은 서평이 나온다면 부끄러워도 직접 알리는 수밖에 없다.
특이 책이 2쇄를 찍게 됐다면 출판계 내부 독자들을 향해 자랑하자.
출판사도 장사를 하는 기업이다.
2쇄를 찍은 작가가 다음 책을 낼 기회를 얻는 데 있어서 2쇄를 못 찍어본 작가보다 더 유리하다.
어떤 젊은 작가 지망생들은 다른 직장을 구할 시도를 하지 않고 전업 작가라는 배수진을 치려고 한다.
글 쓰는 일이 아닌 일에 보내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빨리 문명을 알리고 싶은 조바심에 위험하더라도 지름길로 가보자,
도박을 걸어보자는 마음이 되는 것이리라.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한국에서 인세 수입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그 축복받은 소수에 당신이나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생활을 하려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결국 글 쓰는 일이 아닌 일에 시간을 보내기는 마찬가지가 된다.
게다가 기약 없이 좌절이 이어지는 일상은 사람의 마음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없다면 더 그렇다.
반면 직장생활을 하며 내실 있게 쌓은 사회 경험은 좋은 작가가 되는 데 장기적으로 유익하면 유익하지 해롭지 않다.
먼저 ‘부업 작가’로 어느 단계까지 이르기를 목표로 삼자.
특히 내성적인 이들 중에 혹여 ‘사람 대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전업 작가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책을 만드는 작업이야말로 협업이며, 전업 작가의 업무 역시 협상과 타협의 연속이다.
유명 작가가 조용한 집필실에서 다른 사람 방해 없이 원고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영화에나 나오는 판타지다.
글 앞머리에 모리 히로시의 말을 인용했다.
그 말을 조금 변해도 역시 훌륭한 조언이 된다.
‘다음에 발표한 작품이 이전 작품에 대한 홍보 도구도 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어느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과거 작품도 찾아본다.
그래서 한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구작의 판매량도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니 꾸준히 쓸 일이다.
다음, 혹은 그다음 작품이 성공해서 이전 작품들까지 조명을 받게 해 줄지 모른다.
특히 문학이 아니라 비문학, 그것도 얼마간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책을 냈다면 비슷한 주제로 책을 두 권쯤
더 써보길 권한다.
이어지는 주제로 책을 세 권 낸 저자는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면서 강연과 방송 출연 기회 등이 생긴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강연 수요처나 방송사들은 수천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소셜미디어 스타보다 한 분야에서
책 세 권을 낸 저자를 훨씬 더 신뢰한다.
어느 비문학 출판사 대표로부터, 그의 회사에서 책을 낸 저자의 인세와 강연 수입을 비교 분석해봤더니 대략 1 대 3 비율이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1만 4000원짜리 책을 1쇄 3000부, 2쇄 2000부를 찍었다면 저자의 인세 수입은 700만 원이다(참고로 저자 인세는 대부분 책 정가의 10퍼센트다. 공저가 아닌 단독 저서인데, 인새를 정가의 10퍼센트 미만으로 주겠다는 출판사와는 계약을 하지 마라).
그런 경우 저자의 강연 수입은 인세의 세 배인 2100만 원꼴이고, 책으로 인한 인세와 강연 수입의 합계는 2800만 원
정도 된다는 것이다.
이게 한 출판사 저자들의 특수한 사례인 것 같지는 않다.
비율까지는 몰라도 많은 작가들이 인세 수입보다 강연 수입이 더 높다고 고백한다.
출판시장이 위축되고 강연 시장이 성장하면서 생긴 웃지 못한 트렌드다.
개탄스럽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저술업에 뜻을 둔 이라면 알아두기는 해야 할 시대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생계나 경력 관리 문제에서보다 자유로운 50대 이상이 저자로 데뷔하는 일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중이다.
나는 그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리라고 믿는데, 인구구조 때문에라도 그렇다.
지난해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60~69살 인구 (631만여 명)가 20~29살 인구(681만여 명)와 비슷하다.
50대 인구 (866만여 명)는 30대 인구 (707만여 명) 보다 훨씬 더 많다.
작가를 꿈꾸는 이가 모든 연령대에 같은 비율로 있다면 50대 이상 신인 저자가 지금보다 더 쏟아져 나와야 한다.
요즘 50,60대가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체력이나 열정이 모자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겪은 한국 현대사는 흥미진진할 것이고, 살아오면서 쌓은 경륜도 얕지 않을 것이다.
그 경험과 통찰을 책으로 나워주기 바라고 있다.
우리 출판계, 문학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에 60,70대 신인 소설가들이 아쿠타가와상 등 큼직한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분에 역대 최고령(62살) 당선자가 나왔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신다.
혹시 이게 신호탄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