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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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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7일 금요일 한겨레 22면 하단

 

바쁘면, 돌아보고 둘러보고 넓게 보고 멀리 볼 수 없다. 그저 여기저기 매달려 살 뿐. 요즘 내가 딱 그 짝이다. 여유 있게 굽은 골목길로 발을 들여놓지도,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처량하게 쳐다보지도, 사람을 정성껏 대하지도 못한다. 할 일의 가짓수는 늘어 가는데, 머리는 더디고 손은 느리고 몸은 굼뜨다.

 바쁘다 보니, 만나자는 연락에 '눈코 뜰 새 없다'며 거절하기 일쑤. 이 표현과 같은 뜻의 '안비막개'(眼鼻莫開, 눈과 코를 뜰 수 없다)라는 한자어도 있는 걸 보면, 옛사람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바쁘면, 말도 부실하다. 국수에는 젓가락이, 팥죽에는 숟가락이 함께 있어야 하듯이, 말도 목적어가 나오면 그에 맞춤한 서술어가 와야 한다. '입을 열다' '귀를 파다'처럼. 그런데 '눈 코 뜰 새'는 서술어 하나가 빠졌다. 눈은 뜰 수 있지만, 코는 어떻게 해도 '뜰' 수가 없다. 그냥 '냅둬도' 얼굴 한가운데 얌전히 달려 있으면서 자동으로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게 코다. 우리가 코한테 할 수 있는 행동이라야 벌름거리거나 킁킁거리거나 파거나 푸는 정도(코를 세우는 건 돈이 든다).

 문법에 엄격한 사람이라면, 저 표현은 호응이 되지 않으니 '눈을 뜨고 코로 숨 쉴 새도 없다'로 고치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면 리듬감도 사라지고 재미도 없다(코로 숨 쉬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담?). 그렇게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 아니다.

 없어야 재미있는 게 있다. 없으면 상상하게 된다(코를 뜰 수 있는 방법은 무러까?). 허술하고 부실한 것이 생명력이 있다. 굽은 나무가 잘리지 않는다는 말을 여기에도 쓸 수 있으려나.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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