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소설 작법서들이 제각각 서사와 플롯에 대한 이론을 펼친다.
서사와 서술은 어떻게 다르고 스토리와 플롯은 어떻게 다른지 길게 설명하기도 하고, 독자를 쉽게 끌어들이고
사용하기도 편리한 8가지, 9가지 혹은 20가지 플롯 유형이라든가 지켜야 할 원칙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개 작법서 저자들은 만들기 쉽지만 예비 작가들이 써먹기는 어려운 노하우들이다.
이미 완성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사후 분석이자 분류법이지, 글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의 플롯에는 분명 공통 요소들이 있고 기하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걸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서사와 플롯에 대한 오해도 많다.
예를 들어 '왕이 죽고 왕비도 죽었다'라고 하면 스토리요,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기고 왕비도 따라 죽었다'고 쓰면
플롯이라는 얘기가 자주 회자된다.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에 나오는 이말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면 플롯의 핵심은 사건들의 연관성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더 나아가 작품 속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잘 밝혀주면 저절로 플롯이 만들어진다고도 믿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왕을 잃으느 슬픔에 왕비가 따라 죽고 권력 공백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전국시대가 온다고 인과관계를 밝히며 길게
사연을 풀어놓은들, 그걸 플롯이라고 부리기는 어렵다.
"요즘 한국 소설에는 서사가 없다, 화자는 골방에 갇혀 있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서사는 곧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규모와 화자의 활동 반경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핵전쟁 이후에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같은 식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종종 나온다.
그런데 그런다고 플롯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일단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라'는 조언도 어떤 출발점은 되겠지만,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그 효과를 너무 과신해서는 안된다.
나는 플롯이 '얼나마 설득력 있게 긴장을 조성하고 해소하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지금 내가 급히 만들어내 사례들을 살펴보자.
(가)
아침에는 국물 라면을 끓여 먹는다.
꼬불꼬불한 면발을 보니 어지럽다.
나는 울적해지고 만다.
점심이 되어 짜장 라면을 먹는다.
짜장 소스를 보며 시대의 암흑을 느낀다.
저녁에는 컵라면을 먹는다.
세상은 컵라면처럼 즉물적이다.
(나)
반투명 드래곤이 불투명 드래곤에게 싸움을 걸었다.
반투명 드래곤이 소리 질렀다.
크아아악 다크브레스파이어~~~~.
하지만 투명 드래곤은 다크브레스파이어보다 169배 강한 '대학살의 운석 충돌'기술로 반투명 드래곤을 물리쳤다.
(다)
재벌 3세와 서민 여성이 사랑에 빠진다.
재벌 회장과 사모님은 그 사랑을 망칠 음모를 세운다.
그런데 사모님이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리고 회장님은 하필 그날 아침 침대에서 자기가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걸 알아차린다.
다 엉터리 같은 초안이다.
(가)에서는 아예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나)에서는 일단 드래곤 두 마리가 싸우니까 긴장은 있다.
그런데 그 긴장이 어느 선까지 오르지 못하고 사라진다.
(다)에서는 긴장이 조성되고 해소되는데 그 과정에 설득력이 없다.
이 세 보기에서의 플롯이라 해도 좋고 서사성이라고 해도 좋은 무언가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가)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시대의 암흑'과 '세상의 즉물성'을 아무리 깊이 있게 서술한 들, 라면 면발의 꼬부라진 모양을
아무리 참신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들, 그게 플롯과 관련이 없음은 명확하다.
물론 시대의 암흑에 대한 참신한 통찰과 라면 면발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독특한 언어 때문에 이 초안이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떤 긴장 없이, 플롯 없이 말이다.
문학의 영토는 넓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초안에 몇 가지 장치로 긴장감을 부여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재난이 발생해서 인류 종말이 온 세계라는 설정은 답이 아니다.
그런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건의 규모와 인물의 이동 거리는 플롯과 무관하다.
국물 라면에 질려서 짜장 라면을 먹었고 봉지라면에 질려서 컵라면을 먹었다는 '인과관계' 역시 아무리 자세히 설면해 봐야 긴장감이나 플롯과 관련이 없다.
세끼 내내 라면을 먹는다는 주인공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긴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어떻게? 세상이 망할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홍수가 나서 마을이 고립됐다고 치자.
먹을 거라고는 오직 라면뿐인데 주인공에게는 치명적인 라면 알레르기가 있다면? 특정 성분이 든 라면을 먹으면 기도가 막혀 죽는데, 그 특성 성분이 어떤 라면에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면? 그렇다면 라면을 한 끼 먹을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나)에서 반투명 드래곤과 불투명 드래곤의 싸움에서 긴장감이 적절한 수준까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불투명 드래곤이 너무 쉽게 반투명 드래곤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반투명 드래곤이 "다크브레스파이어~~~"라는 기술 이름을 외칠 때 불투명 드래곤은 우선 놀라야 한다.
"뭐? 설마! 수백 년 전에 사라진 그 마법을 어떻게 네가?"하고 말이다.
거기에 더해 다크브레스파이어를 그대로 맞으면 불투명 드래곤 혼자 죽을 테지만 그걸 169배 강한 '대학살의 운석 충돌'로 막아내면 근처에 있는 동료들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길게 서술하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흐름이 저절로 생겨난다.
반투명이가 불덩이를 발사하고(발단), 불투명이는 그게 눈속임인지 아닌지 의심하다가 진짜임을 깨닫고(전개), '대학살의 운석 충돌' 기술의 위험성을 고려하고(위기),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몰린다(절정).
결말이 어느 쪽이어도 긴장은 해소된다.
절묘한 전술로 다른 희생자 없이 반투명이를 무찌르는 해피엔딩이어도 그렇고, 불투명이가 영웅적 죽음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다)의 문제는 기억상실증이 굉장히 드물다는 사실이나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환상성이 아니다.
그런 해법이 앞에서 쌓아 올린 기장의 방향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선 독자를 납득시킬 수 없다.
현실에서는 간혹 이이한 우연이나 우발적인 사고가 사람들의 갈등을 한꺼번에 정리하기도 하지만, 소설에서는-플롯을 중시하는 작품이라면-그러면 안 된다.
재벌 회장님이 벌레로 변하는 결말을 내려면, 최소한 그곳이 기묘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벌어지는 세계임을 앞에서 충분히 밝혀야 한다.
인물 몇 사람과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이 있으면 긴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궁 무궁하다.
동시에 인물과 사건이 개성 있고 입체적일수록 모험 플롯이니 탈출 플롯이니 몰락 플롯이니 하는 정형화된 틀에 끼워 맞추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10가지, 20가지 유형을 소개하는 매뉴얼을 추천하지 않는다.
사실 숙련된 작가들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유형 중 몇 가지를 섞어 쓰게 된다.
예컨대 자기 한계를 깨닫고 극복하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는 어느 유형과도 잘 어울린다.
내가 권하는 팁은 이전 회에서 이야기 한,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욕망이 충족되거나 두려움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언제나 엄청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또 독자는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행동 동기에 쉽게 설득된다.
솜씨 좋은 작가들은 인물을 이용해 플롯을 전개하고, 또 플롯을 발전시키면서 인물을 쌓아 올린다.
재벌 사모님은 실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좁은 세계에서 오래 살아온 한 인간의 잘못된 모정 때문에 아들의 결혼을 반대한 것일 수도 있다.
욕망과 두려움이 충돌하면 긴장은 더 치열해진다.
허기를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과 라면 알레르기로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불투명 드래곤이 전투를 구경 중인 어린 드래곤들의 무고한 희생을 세상 무엇보다 더 두려워한다면?
동시에 불투명 드래곤이 반투명 드래곤을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각오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작가가 그렇게 불타오르는 플롯을 만들어 던지면 독자는 기꺼이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환상이 많이 끼어들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