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다」 「빛의 호위」 「환한 숨」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를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호석문학상, 무영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며칠, 아침형인간?에 도전하기 위해 우선, 5시 반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내가 평소대로 6시에 일어나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해왔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내가 하는 행동들에 의해 아내도 자연스럽게 깨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아~~~ 어쩜, 나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부터는 평소대로 일어나고 있다. 주말에는 아내와 아이들은 8시가 넘어 일어나기에 이젠, 조용히 일어나 미니스탠드와 책, 신문을 가급적 소리 나지 않게 갔고 와서 식탁에 조용히 않는다. 그리고 읽고 있다. 오늘도.
책을 대여하고,
'겨울을 지나가다'라는 제목에 지나치지 못했다.
겨울'을'과 겨울'이'이 지나가다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
-을, -이'에 따라 문장자체가 문법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지만, 능동형과 피동형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겨울'을' 지나가다는 이 소설의 화자가 그 '겨울'의 의미가 무엇이 되었건 주체가 되어 그 겨울을 이겨내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엔 어느 정도 맞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눈이 머무는 단어들이 '죽음' '고아' '고작'이 있었다.
어떤 누군가도 피할 수 없는 죽음. 그 죽음을 대하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겐 그 죽음에 대한 준비하는 시간과 그 죽음을 온전히 보내드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에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본인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죽음을 맞이할 준비의 시간도 없이 그리고 아버지의 떠나시고 나서도 내겐 온전하게 보내드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준비할 시간은 내가 정할 수는 없었지만, 보내드리는 시간은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갖을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또 하나, '고아'
나이가 있음에도 부모님이 모두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형제자매도 있고 아내와 자녀들도 있지만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느껴지는 홀로된 외로움.
그 홀로된 외로움은 아주 늦게 맞이하고 싶다....ㅠ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집에 남게 된 정연.
그곳에서 딱히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정연은 어머니의 어떤 흔적도 지우지 않고, 어머니가 신었던 신발, 옷, 어머니가 해 오셨던 칼국수집에서 한 끼 식사를 위해 시작한 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만나고 완전한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어머니 부탁으로 정미의 집을 만들어 준, 일 때문에 알게 된 다연, 그 다연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퇴사하고 J읍에서 목공소를 차리게 된 영준을 만나게 된다. 목공소 영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되고 다연이가 살던 집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전해 받고, 정연과 영중은 다연이가 살던 집을 찾아가 2월 어느날인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게 된다.
동지 - 대한 - 우수의 절기로 나눠진 3부는 절기가 주는 느낌에 맞게, 어머니의 떠남이 슬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슬픔이 고조되었다가 봄이 오듯이 슬픔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나서의,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의 시간이 중요하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을 따라 가면서 이해하기보다는, 곁에 계실 때 살아오신 그 삶의 궤적들을 좀 더 이해하고 다가가고 싶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줄곧 바라본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