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바쁘면, 돌아보고 둘러보고 넓게 보고 멀리 볼 수 없다. 그저 여기저기 매달려 살 뿐. 요즘 내가 딱 그 짝이다. 여유 있게 굽은 골목길로 발을 들여놓지도,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처량하게 쳐다보지도, 사람을 정성껏 대하지도 못한다. 할 일의 가짓수는 늘어 가는데, 머리는 더디고 손은 느리고 몸은 굼뜨다. 바쁘다 보니, 만나자는 연락에 '눈코 뜰 새 없다'며 거절하기 일쑤. 이 표현과 같은 뜻의 '안비막개'(眼鼻莫開, 눈과 코를 뜰 수 없다)라는 한자어도 있는 걸 보면, 옛사람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바쁘면, 말도 부실하다. 국수에는 젓가락이, 팥죽에는 숟가락이 함께 있어야 하듯이, 말도 목적어가 나오면 그에 맞춤한 서술어가 와야 한다. '입을 열다' '귀를 파다'처럼. 그런데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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